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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

​ 지난 일년동안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반응하고 내 세계를 넓히고 있다. 이것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행복감이 모든 근심을 덮어버리고, 더할 나위 없다는 기분을 들게 하다니, 너무 작은 것에 만족하는 건 아닐까. 마치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나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이라며 시가 도착했다. 안희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어제는 우산을 가방에 숨긴 채 비를 맞았지 빗속에서도 뭉개지거나 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퉁퉁 부은 발이 장화 밖으로 흘러넘쳐도 내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 비밀을 들키기 위해 버스에 노트를 두고 내린 날 초인종이 고장 나지 않았..

2017 2017.11.12

가을엔 사랑해요 배리 매닐로우

라디오일기#15 땀 한 방울 안 흘린 출근길 얼마만인가. 출근길 환승역에서 내리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어제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지만 하루 지난 오늘, 8월 중순인 오늘, 가을이 오고 있구나를 느껴버렸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배리 매닐로우.. 가을에 완전 사랑해요! 그의 노래들이 올 가을에 얼마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인가! 오늘 나온 노래는 can't smile without you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2016)

최고의 마지막 장면. 침범하는 힘과 저항하는 힘이 끊임없이 긴장감을 일으키다 채드가 아들 타이슨과 떡갈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환희의 장면으로 영화를 맺는다. 이 한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는 듯, 채드와 타이슨과 강아지가 뛰어내리는 단 2초 간의 장면에서 숨이 멎는다. 한 개인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긴장감, 이에 따른 '무엇이 침범이며, 무엇이 저항인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개연성 없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인간의 모습(아이와 갱스터로 이루어진 가족 공동체, 동물을 죽이면서 또한 살리는). 그런데 이제 마이클 패스벤더의 영화를, 내가 또 보게 될 것인가.....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Trespass Against Us, 2016) 감독 : 아담 스미스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채드), 린제이 마셜(켈리), ..

inspired from 2017.07.30

박종필 감독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가장 미안할 것이 없는 분이. 아무도 사죄하지 않아 그날 이후로 멈춰버린 시간에 살았는데 한 사람이 온 몸을 던져서 우리 모두 움직이는 시간 속에 살게 됐다. 과로 때문에 병이 커진 게 알려지면 혹 누군가 자책할까봐 숨겼다고 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떠나는 이와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아무 연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교수님 연구에 참여하며 이 분의 녹취록을 푼 적이 있다. 비 내리는 10월의 밤들에 13페이지를 빼곡히 채워 간 그의 증언을 두 번, 세 번 들으며 받아 적다가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어느 순간 잊고 살던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다시 달았다.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김관홍 잠수사님..

2017 2017.07.30

사월에 내리는 소나기

​ 사월의 소나기는 오월의 꽃을 불러옵니다 저, 비를 본적 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해가 어느 일요일에 반짝 떠버린다면 그건 다 사랑이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잃어버린 걸 너의 눈 속에서 다시 찾아낸다면 그 어떤 수고와 노력도 의미가 있네 그건 다 사랑이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겠지 * 4월에 사랑한 노래. 그 어느 해 4월부터는 듣지 않게 되었지만. 무언가를 얻어낸 이야기가 아닌 계속 찾아가는 이야기가 장맛비가 내리다 마는 한여름에 생각난다. 곧 찾아 올 꽃이 아닌, 소나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내 마음, 잃어버린 걸 찾아서 돌고 돌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너의 눈.

존 덴버 좋아하세요? (1)

라디오일기#9 중학교 때 오빠는 엄마 생일에 선물로 존 덴버 베스트앨범 카세트테입을 사왔다. 첫 곡은 annie's song. 이 예쁜 노래를, 엄마를 위해 가사도 크게 프린트하고 듣고 또 들었다. 아내 애니를 위해 만든 노래에 온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넣었다. 자기의 이름이 들어간 제일 아름다운 헌사가 전세계에서 불리는 기분이란! 이후 둘은 헤어졌다. 사랑은 깨어졌는데 노래는 계속 아름답게 남아있다. 어제는 신지혜의 영화음악에 이 노래가 나왔는데, 무려 에 수록이 됐다고 한다. 지하철 환승하는 도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에 박수를 칠 뻔했다. 그의 모든 노래는 무해한 유기농 같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유시인의 노래가 봉준호의 (순수하고 착한. -아마도.) 상상력과 잘 어울릴 것 같다..

런치박스(2014) -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 ​ 도시락을 싸는 여자가 있다. 냉랭해진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그 가장 맛있는 도시락은 엉뚱한 이에게 전달된다. 찌든 얼굴로 출근하는 남자가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쿠사리를 먹인 까칠한 남자는 만원 버스에 올라 퇴직을 앞둔 회사에 아무런 기대감 없이 출근한다. 그런 남자에게 작은 활력소가 찾아왔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타고. 여자에게 도시락은 마지막에 잡는 지푸라기 마냥, 남편에게 받은 거절감을 회복시킬, 남편과의 최후 연결고리이다.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통에 계획은 무너졌다. 다만 그녀에게도 역시, 마음에 힘을 일으킬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 역시 엉뚱한 이와 나누게 된 도시락 속 편지를 통해서다. 둘을 연결하는 건 도시락과 편지에 적힌 글자들만..

inspired from 201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