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5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새벽이 빌려 준 마음 (2019)

시간이란 지나면 영영 잃는 것 같지만서도, 결국엔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니 시간과 계절이란 건 한편 얼마나 귀중한 약속인지. 아침과 오후 내내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든 다시 밤은 온다. 봄과 여름의 지난한 시간을 거쳐 늦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어 모든 소란이 잠잠해 지는 때가 온다. 오랫동안 새벽이 빌려준 마음에 기대어 살아,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항상 어렵다. 내가 살아내야 할 저 소란스런 공간에 발 디뎌야 또 이 하루가 지나갈텐데, 발 들여놓지 않고서 아무 것도 일어나는 게 없는데. 저 너머 아침이란 곳은 내 소리가 가닿지 않고, 무지개마저 말라버려 빗줄기가 끊일 줄 모른다. 그 와중에 신은 사람이 되었고, 그것도 우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내 분주한 마음이..

이승윤 감상문 2021.05.16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시적 허용 (2020)

점점 과잉해지고 있는 이승윤 노래 과잉해석. 아니 그냥 과잉감상. 여튼 이 노랠 들으며 사랑하는 영화 일포스티노를 떠올려도 될지. 사람을 표현하는 존재로 좁혀서 보면 어쩔 땐 표현이란 건 전부이다. 표현을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내놓는다. 글도 모르던 우편배달부가 글을 읽고, 만물을 시로 표현하게 되었을 때... 그는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전율을 느낀다. 산이랑 바다랑 사랑하는 사람을 은유로 표현하는 게 뭐가 대수냐 싶지만, 그는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은유 속에서 자유를 찾게 된 시인이 갑자기 점프하여 목숨을 던질 용기를 가진 적극적인 발언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간극을 채우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시적 ..

이승윤 감상문 2021.05.08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무얼 훔치지 (2016)

소중한 것들 중엔 돈으로 못 사는 게 많다. 공짜로 얻을 수 있다. 근데 너무 예뻐서 아직 제대로 볼 준비가 안 된 거 같아 나중에 맘먹고 만나봐야지 하니 이미 멀찍이 가버렸다. 시간만 훌쩍 지나 낡고 녹슬어 영영 잃었구나. 근데 어느 날, 아아주 가끔은 알게 된다. 다 떠나버렸다고 생각한 순간에 날 지탱하고 지켜주는 게 아주 가 버린 건 아니란 것을. 몰랐는데 여전히 날 보고 웃는 그 존재를 마주할 때 나는 다시 내 얼굴을 찾는다. 왜 이렇게 소중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내 곁에 남아있는 걸까? 돈이, 음식이 날 살게 하는 와중에 그것과 다른 무언가가 사람을 일으키는, 그 말도 안 되는 힘을 목격할 때마다 난 그게 처음 일어난 일인 양 늘 익숙하지 않게 감탄하고 싶다. (아 아까와라... 닳아 없어질까 ..

이승윤 감상문 2021.05.05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없을 걸 (2011) +어린이날 스페셜

흡사 노래하는 외인구단을 꾸려서 다함께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노랫말을 듣다 보면 성장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이다. 이승윤 특유의 여러가지 소리들과 쉴새없는 (신난) 코러스 소리가 어우러져 더더욱 그렇다. 노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된다. 소리치는 자, 더듬거리는 자, 박자를 놓친 자, 삑소리를 내는 자... 이 환대의 공간에서는 누구도 위축되지 않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다. 구분된 작은 공간에서 서로 용기를 북돋우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조그만 공간을 꽉 채우던 소리는 광대한 세상에서 “턱없이 희미하고 작았”다. 현실의 쓴 맛을 본 외인구단. 하지만 이들은 거대한 세상이 요구하는 노래를 거부한다. 설령 “들어주는 이 하나..

이승윤 감상문 2021.05.04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오늘도 (2013)

노래를 부르는 이는 마음과 몸이 다친 사람과 함께 있나보다. 마음 뿐 아니라 몸이 다친 사람을 상상하는 이유는, 이 노랠 처음 들을 때부터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중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많이 죽고 있었는지, 마치 실시간으로 사망소식이 들리는 것 같은데도 세상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다쳐야만 끝이 나는 하루”라는 가사처럼, 다치거나 죽는 게 숙명인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듯이. 어떤 이들은 “커튼이 가려놓은 창 밖의 하루”에 희망 보단 두려움을 떠올린다. 하루 일을 곱씹으며 누운 밤, 그들은 “말이 그저 하고픈지, 할 말이 있는지 잠이 와도 쉽게 잠 들지 못”한다. 때로는 늦은 밤까지 “다리가 저리도록..

이승윤 감상문 202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