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추억 어둠 속에서 내 얼굴도, 성별도, 나이도, 학력도, 지위도, 갖고 있는 돈도 다 가려졌을 때, 나란 사람을 나타낸 건 촛불 하나였다. 촛불 하나 들고 난 저곳을 지키는 엄연한 한 개인이었고, 그 환한 불빛에 의해 멀리서도 개수되었다. 광장에서 우리 각자는 모두 동등한, 촛불 하나만큼의 사람이었다. 굉장했지. ^_______^ 2017 2017.11.26
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 지난 일년동안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반응하고 내 세계를 넓히고 있다. 이것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행복감이 모든 근심을 덮어버리고, 더할 나위 없다는 기분을 들게 하다니, 너무 작은 것에 만족하는 건 아닐까. 마치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나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이라며 시가 도착했다. 안희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어제는 우산을 가방에 숨긴 채 비를 맞았지 빗속에서도 뭉개지거나 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퉁퉁 부은 발이 장화 밖으로 흘러넘쳐도 내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 비밀을 들키기 위해 버스에 노트를 두고 내린 날 초인종이 고장 나지 않았.. 2017 2017.11.12
박종필 감독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가장 미안할 것이 없는 분이. 아무도 사죄하지 않아 그날 이후로 멈춰버린 시간에 살았는데 한 사람이 온 몸을 던져서 우리 모두 움직이는 시간 속에 살게 됐다. 과로 때문에 병이 커진 게 알려지면 혹 누군가 자책할까봐 숨겼다고 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떠나는 이와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아무 연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교수님 연구에 참여하며 이 분의 녹취록을 푼 적이 있다. 비 내리는 10월의 밤들에 13페이지를 빼곡히 채워 간 그의 증언을 두 번, 세 번 들으며 받아 적다가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어느 순간 잊고 살던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다시 달았다.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김관홍 잠수사님.. 2017 2017.07.30
음악당 주변을 걸으며 어느 흐린 날. 나는 길을 걸으며 춤을 추었다. 남들이 보기엔 기분 좋은 어떤 여자애가 신나게 걷고 있다 정도로 보였겠지만. 멘델스존을 들으며 그때 춤 추며 기뻤던 기분이,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아직 울다 웃는다. 행복하면 원래 약간은 슬프고 그렇다. 앙상블 디토의 공연을 기다리며. 한 여름의 늦은 오후. 서울이 아닌 어떤 동네의 음악당 주변. 비가 와서 선선한 날씨, 내 손엔 커피가 있었고, 콘서트 티켓이 있었다. 멘델스존의 song without words, 말이 없어도 됨.. 대신 춤이 있으니. :) 괜찮은 사진 하나 못 남겼지만. 행복해서 날아가버릴 것만 같던 완벽한 한 날의 오후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공연을 기다리면서. 2017 2017.06.29
what a sleepless night. (공연 끝난줄 알고 찍은 건데 이거 찍고 혼남.) 내일 다시 일상이 시작되어서 그럴까. 이대로 자면 차이코프스키의 여운이 사라질까봐 그럴까. 둘다 맞겠지. 휴. 잠 자기 싫어 ㅠㅠ #리처드용재오닐 #앙상블디토 #디토페스티벌 #ditto10th #divertimento 2017 2017.06.26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 이규리의 시집 중 "특별한 일". 기도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일에 신비로운 하나를 어떻게든 담아보자니, 내 마음은 바로 이러했다.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내 기도가 무력하.. 2017 2017.06.19
여름에 제일 좋은 것 1 "이제 늙었어.. 예전만큼 재밌지가 않다. 뭘 탔다고 멀미가 가라앉지 않는 거지. 그리고 내 인생에 바이킹 가운데 탈 줄은 생각도 못했어. 근데 이제 끝에 절대 못타. 에휴에휴" .. 그리고 그 이후. 한 여름 밤의 후룸라이드 단 몇분으로 다 보상받았다. 사진 찍힐 때 하트를 할 거라느니 별 소릴 다 하고 제일 공포스런 표정하고 있는 둘의 모습 보느라 혼이 나갈 정도로 웃은 것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한여름밤+후룸라이드* 2017 2017.06.18
우울한 봄의 노래 "꿈을 베고 누운 소녀 이마 위에 아지랑이 내려와 흔들리면 혼자서만 머물다 지난 거리에 맨발로 풀린 아이되어" 손지연의 꽃비. 2년 전 봄, 오후에 한 인문학 카페에서 손지연 공연을 했더랬다. 가서 오매불망 꽃비를 기다렸는데 거의 마지막에, 사람들이 요청하니까 부르더라. 봄은 내게 마냥 밝거나 신나지만은 않고 살짝, 우울함이 밀려오는 계절인데, 손지연의 노래들은 그, 살짝, 우울한 내 봄의 정서를 건드린다. 지금 엄연한 여름이지만 초여름은 아직 봄을 기억하기에 늦지 않았다. 난 봄에 대해 할말이 더 남았다. 2017 2017.06.16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 저 햇빛 심히 쬐이고 또 짐이 무거워 /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나 방황할 때에 /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곳 찾았네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 나 위해 고생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 뿐이라 /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관계 없도다 / 내 한량 없는 영광은 십자가 뿐이라 Beneath the cross of Jesus I gladly take my stand / the shadow of a mighty Rock within a weary land / a home within the wilderness, a r.. 2017 201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