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EIDF 2018>에서 본 작품들

winter_inspired 2018. 9. 17. 00:27

1. 제인(Jane)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 지구상에 남아있다니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다. 미혼 여성 혼자 오지에 갈 수 없어 그녀의 어머니가 동행했다는 사실도 그러했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지원으로 휴고란 사람이 영상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인연으로 제인 구달의 첫 남편이 된 휴고 덕분에 그녀의 초기 연구 활동이 이렇게 너무 예쁘게 남았다. 제인, 휴고, 아들 그룹. 오지의 한 가족이 왜 침팬지보다 내 뇌리에 오래 남았는가. 그래서 <제인> 시사회에 참석한 제인 구달, 아들 그룹, 손자의 사진을 영화 장면 대신 걸어보았다.

2. 마지 도리스 (Maj Doris)

노년의 열정적인 예술가가 자신의 뿌리 '사미족'의 단촐한 생활로 돌아간다. 눈 덮인 집에서 순록을 키우는 마지 도리스, 그 생활은 고요하고 무위인 것이 마치 저 북유럽의 끝없는 설원 같다. 뿌리와 민족이 무슨 대수냐 싶지만, 나고 자란 문화와 양식은 때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이토록 이타적이게 만드는 걸까. 자본과 욕망이 사미족의 땅을 덮을 때, 누군가는 피를 흘렸고, 노년의 예술가는 여전히 '나의 사람들'을 부른다.

3. 헤비메탈 정치인 (Metal Politics Taiwan)

무대에서는 하드코어, 정치판에서는 대만 진보정치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달라이라마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는, 이 모든 게 프레디 림(Freddy Lim)스러운 것. 대만은 정말이지 지금 우리나라와 너무나 비슷하다. 겨우겨우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적폐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강대국으로부터의 독립,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 등 진보정치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문화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매우 신나게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트럼프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북한과의 관계에 진전이 있었듯(매우 불안하게 두고보고 있으면서도),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원하는 프레디 림이 트럼프를 바라보는 양가적 생각까지도 알 것 같은 것 무엇.

4. 수퍼 디스고 (Super Disco)

무대 위의 술탄오브더디스코는 무려 귀엽고 재밌고 신나는 와중에, 끊임없이 심난해 죽겠는 곰사장의 얼굴이 묘미다. '지속가능'+'딴따라'의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처럼. 그런데 누구나 마음 속에 디스코 하나 품고 있지 않은가. 붕가붕가레코드와 술탄오브더레코드의 딴따라길. 부디 계속 쭉 걸어가셨으면.

5. 실크로드의 아이들 - 음악은 나의 운명 (Kids on the Silk Road - India: Music in My Blood)

<실크로드의 아이들> 시리즈 총 다섯 편 중 겨우 하나 봤다. 전통 음악을 고수하며, 결혼식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라비의 가족. 라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향한 열망이 멈춰지질 않는다.

6. 영 솔리튜드 (Young Solitude)

누군가를 편견없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계라니, 님들 참 멋지다. 비로소 외로움을 꺼내고 마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우는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고, 등 토닥 거릴 수 있고, 제각각 포즈 잡고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다면, 더 필요한 게 없을 것 같다. 예쁘고 부러워.

7. 영화과를 졸업한 언니들과 나

때때로 나는 내 선택에 의문을 갖곤 한다. 왜 나는 돈도 안 되는 전공을 선택해서 여지껏 속이 타는 것인가. 불과 얼마 전 나는 나를 부정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내 나는 내 선택이 최고였다고 긍정하기로 했다. 나마저도 나를, 내 선택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부정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 슬퍼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큐 속 그들은 결국 모두, 결국 다시 영화를 선택했다.

8. 왈라의 선택

왈라의 큰 눈이 나를 슬프게 한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사는 왈라. 세상은 왈라와 동생의 철부지 어린 시절과 자유로운 생각을 빼앗았다. 왈라는 강해지도록 내몰리고, 강해지는 것을 선택한다. 팔레스타인 군대로 가는 그 선택은 마치 요동치는 불안함과 쫓겨사는 설움을 이겨내려는 절실함 같았다. 그 땅의 모든 것이 머지않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9. 한계상황 (Over the Limit)

기계체조의 곡예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고들 한다. 이미 상황이 이러한데, 그 정신적 상황마저 극한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는 건 숨이 막힌다. 리타 마문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버티고 버티는 것으로 이미 드라마 하나 완성인데 결국 금메달을 따고야 말았다. 그 다음 날, 리타는 바로 아버지 곁으로 달려가 그의 임종을 지킨다. 지난 리우 올림픽,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 리타 마문의 이야기.

10. 황태자 디벅 (The Prince and the Dybbuk)

베일에 쌓인 영화 프로듀서 마이클 와진스키의 삶을 추적한다. '귀공자'로 알려진 그는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유대인 출신, 동성애자. 철저히 숨겨진 삶이 가능했던 시대상에 더해, 한 영화인의 처절하게 외롭고 고독한 내면이 한참 지난 후 대중 앞에 다시 구성되었다. 소피아 로렌과 마이클 와진스키. 그나저나 사진 속 소피아 로렌이 너무 예쁘다.

 

헥헥. 짧게 쓰는데도 힘들다. 이번에 총 열 편 봤네. 맨날 하나하나 정리하려다 거의 포기해왔기 때문에 이번엔 한번에 정리. 경쟁작은 하나밖에 못봐서 나중에 유료결제라도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