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커피콘서트를 갈 수 있었다. 한달에 한번, 수요일 오후 두시, 커피를 주는 공연. 일 할 때는 절대 못갔고, 백수일 때도 저 시간은 놀면 죄책감 드는 시간이다. 휴가 덕분에 엄마와 너무 아름답고 찡한 공연을 봤다.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의 <그 여자네 집>.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이 예쁜 아카펠라 공연이 되었다. 완전 이입해서 보다가 공연장을 나왔을 때, 관객들과 인사하고 있는 가수&배우분들을 보니 울컥했다. 어떤 할머니 관객 한분은 가수분 보시더니 진짜 우셨다. 이 소설을 공연에 올리기까지의 따뜻한 마음부터 공연 자체의 감동까지 잘 받고 왔다.
내내 남북문제, 광복절, 위안부 문제, 이산가족상봉 뉴스가 쏟아지는 이런 때에 <그 여자네 집>을 만나니 각별할 수밖에. 박완서 선생님은 우리가 가졌던 작고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풍경들을 기억하게 해 주었고, 그것이 침범당하고 찢겨졌다는 사실도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 중에는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고초를 당하고 돌아온,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이웃이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도록 도와주었다. 잔혹한 시대의 트라우마를 모두가 지니고 산다는 사실도 마주하게 했을 것이다.
공연의 끝무렵에는 우리 모두가 아는 위안부 소녀상의 노란 목도리가 등장한다. 징용에 끌려갔던 생존자 만득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위안부 피해자에게 둘러주고 그 옆에 담담히 앉는다. 현재의 우리가 소녀상의 노란 목도리로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건네는 것과, 항상 잊지 않고 살았노라고 당시 모든 피해자를 위로하는 만득의 마음이 만나는 것 같았다.
아카시아가 좋은 이야기를 예쁘게 꺼내주었다. 역사만 볼 때는 도저히 발전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우리나라가 딱하기도, 암담하기도 한데. 잊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총체적 난국에 균열을 낸다는 걸 나는 진리에 가깝게 믿고 있다.
<그 여자네 집>
아카시아 : 김영 홍원표 구예니 송순규 / 출연배우 : 문하나 이석엽 / 연출구성 : 백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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