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4

기억하는 일

한참을 웅얼거리던 내 목소리를 듣는 건 아무도 없었어 결국 나 밖에 없었지 허공에 메아리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온 건 더 깊어진 너의 기억 잊을 수가 없나 봐 검은 하늘에 뜬 별 그리고 흐린 가을에 빨간 옷을 입은 나무가 짧은 인사하듯이 갈 데 없는 내 마음이 방황하는 내 기도가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너의 기억 뿐인데 메아리 되어 돌아온 너를 다시 아로새겨 기억하는 이 하나 둘 쓰러져 갈 때 내 기도가 닿는 곳은 언제나 너의 기억뿐인데 너의 기억뿐인데

2022 2022.06.18

우린 잘했어요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캠페인성 광고와 기사는 사실 해로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유는 “발전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것. ‘발전’이란 단어가 약간 걸리지만, 과연 그러하다. 훗날의 나는 이것이 자기계발의 발전이 아닌, 진보(progress)란 의미에서의 발전으로 이해했기에. 그런데… 믿을 수가 없게, 자뻑이 아니라 정말 객관적인 지표가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게 어느덧 자연스러워진 세상에 살고 있다. 곧 과거가 될까봐, 잊힌 기억이 될까 조마조마한데, 이런 기사는 왜 외신에서만 확인해야 하는 걸까. https://www.wsj.com/articles/despite-high-covid-19-case-counts-asian-nati..

2022 2022.03.31

평화의 일치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정작 내 주변 사람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 세계 평화에 마음이 쏠려도 주변 사람을 시기할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 잘 안다. 이 점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은 바깥 세상에 대해 관심을 끄라는 게 아닌, 점차 넓은 대의부터 시작해 내 주변, 일상, 그리고 나 자신에게까지 평화가 일치되어 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앞뒤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땅히 하느님이 주신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며, 그저 일치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과정 속에 있는 것을 조급해 말자.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라 매일매일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2022 2022.03.19

don’t let it burn, don’t let it fade

The Cranberries의 Linger는 멜로디도 무지 근사하고 첫 소절 시작하는 가사가 들을 때마다 너무 내 맘을 후벼파… if you, if you could return, don’t let it burn, don’t let it fade. 실망하고, 마음처럼 안 되고 그럼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마음이… 그게 사람이 됐든, 이상이 됐든… 돌로레스가 노래를 쓸 때 무슨 의도를 가졌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의 노래에 담긴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싶어한다.

2022 2022.03.01

I choose love

호주에 온지 열 하루가 지났다. 처음 며칠 쨍쨍하고 맑아, 역시 호주, 하던 것도 잠시. 비가 주룩주룩도 아니고 우쾅쾅 쏟아져 한 일주째 춥고 습하다. 앞으로도 쭉 비 예보가 뜨건만 오늘은 어째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런 날 나가줘야 하는데, 그런데. 자가격리 이틀 차. 엄밀히 어제 늦은 밤부터니, 하루 정도 지났다. 집을 공유하는 분이 감기 기운이 있어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더니, 검사 결과 두 줄이 떠버린 것이다. 나는 음성이 나왔지만 빼박 밀접 접촉자로 함께 일주일을 격리해야 한다. 마지막 외출이 되어버린 어제는 비 개인 동네 정취를 맘껏 누리며 신나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귀에는 윱 베빙의 고품격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이젠 적응이 되어간다는 긍정적 마음이 샘솟아 속으로 마침 호주에..

2022 2022.02.27

호주에서의 첫 열 밤

호주에서 열 밤을 자고서야 처음 블로그에 끼적일 마음이 생겼다. 아예 낯설어 버리면 모를까, 애매하게 낯선 곳에서 별 거 아닌 일로 헤매니 즐겁지 않은 요 며칠이었다. 시드니 공항에 처음 내려서 학교에서 제공해 준 공항 픽업 차량을 타니 에드 시런 노래가 나왔다. 그 다음은 마룬 파이브. 한참 비행기 타고 내린 거 맞나, 낯선 거라면 입고 있던 후드티가 너무 덥다는 것 뿐… (나온 노래들 제목이 순서대로 bad habits 그리고 beautiful mistakes. 나쁜 습관, 아름다운 실수) 떠나 온 인천공항이 그립고, 떠나기 전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 종로, 우리 동네, 그리고 가족의 얼굴 다 아른거리고. 그, 몇 개월 나온 것 가지고 나도 좀 이런 유난을 떨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날까봐 헤어질 때..

2022 202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