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영접식에 초대한다는 신부님의 연락을 받은 어느 날. 그 전 몇 주 동안 출장에, 과제에, 하반기 최악의 스케줄을 달리느라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신부님 연락을 받고 하루 종일 신났다. 세례명을 정하는 미션을 받았다. 고민을 해 보겠다고 했지만 거의 마음은 정했고 내 세례명은 ‘루시아’가 되었다. 내가 지은 이름이란 게 되게 묘하다. 어느 공문서에 기록될 리 없는 연약하디 연약한 이 이름은 앞으로 내 의지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유지될 것이다. ㅎㅎㅎ 묘하다 묘해.
1. 성경에서 따온 내 실제 이름의 어원은 ‘빛’이고 루시아의 뜻도 빛이다.
2. 제일 좋아하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에서 제일 좋아하는 산드라 블록이 루시 역을 맡았다.
3.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누피에도 루시가 있다. (최애는 페퍼민트 패티)
하지만 세례명은 성인의 이름에서 따와야 한다. 이전에 주보에서 세례명 루시아를 보았기에 성인 루시아에 대해서 찾아봤다.
4. 루시아는 4세기 시칠리아 시라큐사의 성인이다. 많은 여성 성인은 시대와 체제로부터 늘 분명한 박해의 대상이었다. 루시아는 신앙을 지키려 파혼 의사를 밝혔다가 약혼자에게 목숨의 협박을 받는다. 그래도 루시아의 신앙은 결국 어머니를 감복시켰고, 루시아는 어머니의 지지를 받았다. 루시아는 박해로 두 눈을 잃지만, 그 이름의 뜻이 빛이라니. 우리가 보는 현실과 주님의 계획 그 간극이란.
5. 스웨덴에서는 매년 12월 13일 ‘루시아 축일’을 기념한다는 것을 예전에 티비에서 봤다. 어둠이 긴 북유럽의 겨울을 밝히는 빛의 성인 루시아. 성 루시아 축일은 영접식 날(12월 15일)과 가까웠을 뿐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겨울과 대림절기이니 이 성인의 이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6. 그 외에 성인 루시아에 대해서 찾아보니 천주교 선교 초기 한국에도 ‘루시아’란 이름의 순교자가 있었다. 신앙을 가진 여성으로 그 시절을 살았다는 사실에 더해, 한 분은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겹겹이 모진 삶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평화가 있었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게 차별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았다는 놀라운 이야기.
7. 마태복음 11:3-5 예수께서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혹한의 세상에 빛으로 오신다는 대강절의 메시지가 항상 좋다. 아무튼 이름이 하나 더 생겼고 맘에 든다.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해요, 리키 (0) | 2019.12.26 |
---|---|
밥 로스는 다 알고 있다 (0) | 2019.12.19 |
U2 조슈아트리 투어 복기용 사진 (by 언론사...) (0) | 2019.12.15 |
출장 막날 새벽 (0) | 2019.11.27 |
냄새와 소리 (0) | 201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