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 망충한 기억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합정의 카페에 갔던 그날, 그날은 분명 출국일이었다. 그날은 근무일이기도 한 데다 외부 회의가 있어, 캐리어를 끌고 출근을 하며 엄마의 배웅과 함께 집을 나섰고, 회의 전까지 커피를 마시며 일을 했다. 회의 장소가 하필 홍대 옆이라, 공항가기 딱이라고 좋아했다. 출국 직전에 하는 망충한 짓으로는 여권 까먹기, 티켓 예매 시 성과 이름을 바꿔써서 출국에 지장이 생기기, 환전 까먹기, 비자가 필요한 나라 비자 발급을 준비하지 않은 것 등등이 있겠지만, 그건 너무 안타깝긴 해도 이해가 가는 실수들이다. 하지만 내가 한 짓이 진짜 망충 멍청했다. 그니까 나는 출국 날짜를 잘못 안 것인데, 단순히 잘못 안 것인지, 아님 발권 때 무엇이 씌여서 날짜를 잘못 본 건지 아님... 아님... 도대체 나는 뭐가 문제냐!!!!!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였던 건지, 가늠도 안 되는 그 사실을 안 것은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때였다. 와중에 실물 보딩패스를 받고 싶어서 어플로 체크인을 안 하고, 공항에 가서 체크인 기계를 이용하려던 참이었다. 야무지게 입고 있던 코트를 캐리어에 넣고 기내 반입 가방을 가볍게 정돈한 뒤 여권을 들고 체크인 기계에 섰는데. 오잉? 내 여권을 인식 못 한다. 오잉?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오잉? 비행기 편명을 찾아 넣어봤다. 엥..? 그렇게 나는 내 티켓을 확인했는데. 그렇다... 내가 예매한 비행기는 그날이 아닌 3일 뒤인 월요일 출발이었다.
하하...ㅎㅎㅎ 나는 영혼이 나간 얼굴로 몇 초 앉아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수습에 돌입했다. 일단 1차 숙소인 호스텔 3박을 취소했다. 비행기편을 다시 검색해, 다음날 오후 출발하는 비행기로 변경했고, 앉은 자리에서 추가비용+변경수수로 23만원을 날렸다. 그리고 호스텔 2박을 다시 예약했다. 그리고 회사 사수분에게 망신을 감수하고 출국일을 다시 알렸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 이 모든 바보 같은 사태를 실토했다. 한심하다는 웃음을 듣고나서 눈을 꿈뻑이며 멍하게 공항 벤치에 앉아있다 공항철도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이고지고 다닌 캐리어를 들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여행 마치고 집으로 가는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 온갖 비웃음을 감내하며... 못다한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참에 깜빡한 것도 챙길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했지만 씨타입 충전기 꺼내 충전하고 방에 그대로 꽂아두고 옴ㅋㅋㅋㅋㅋㅋ), 또 그냥 일 끝나고 정신없이 가느니 주말 오후에 가니 이 또한 좋다, 내일 출발 전 부모님이랑 공항에서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기로 했으니 잘됐구나 하면서 희망적으로 기분 전환을 마쳤다.
드디어 다음날 진짜 부모님 동행 하에(?) 공항으로 출발했고, 커피를 빨리 마시고 싶어서 수속을 잽싸게 마치고 밥을 먹었는데 그 큰 공항에 카페가 마땅치가 않다. 결국 버거킹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다 손을 흔들고 비행기에 탔다.
어제 급 바꾼 티켓이라 정가운데 자리가 배정됐는데, 오른쪽 국적불명 남자가 문제였다. 5분에 한번씩 코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디 코를 씨게 푼 뒤 (언뜻 보기에 입으로도 뭔가 뱉는 거 같았음) 그 휴지를 앞선반 밑 주머니(?)에 쑤셔넣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반복될 때마다 예민하지 않은 내 신경에 숨은 초예민세포가 들고 일어나 잠을 거의 못잤다...
그렇게 도착한 밴쿠버. 워크퍼밋 받는 것도 꽤 헤맸는데, 공항에서 받는 거 몰랐다면 물거품인 여정이었겠지 ㅎㅎㅎ 단지 이것을 받으러 온 여행이었어서, 사실 모든 목적은 다 이룬 셈. 여차저차 교통카드를 사서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시티로 향했다. 이제 나의 목적은 짐을 놓고 충전기를 구하는 일. 나는 맥북 충전기로 오만 충전을 다 하는데, 게다가 3일은 일도 해야하니 어서 수습을 해야했다.
호스텔과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렸다. 그 역은 이제는 꽤 익숙해진 예일타운이었음을... 비가 주구장창 오는데 캐리어를 끌고 20분은 걸은 것 같다. 체크인 시간이 남아 우선 짐을 맡겨두었다. 혹시 몰라서 미리 문의했을 때, 디파짓 10불 내면 충전기를 빌려준다고 했었는데 확인해보니 충전기 상태들이 영...
일단 길을 나섰다. 먼저 밥을 먹으려 했는데 입맛이 없어... 그리웠던 팀홀튼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랑자 사이에서 커피랑 도넛 시켜서 먹는데 웬걸 너무 재밌어!!! 입맛도 없었는데 팀비츠 몇개를 너무 시키고 싶어서 이것저것 한입씩 먹고 반을 남겨 나중에 먹었다. 아아 내가 다시 가게 되어 얼마간 산다고 해도 팀홀튼을 늘 사랑할 것 같아. 팀홀튼에 이상한 집착이 있음.
이제 진짜 목적은 '저렴이 충전기를 사기'. 막 도착한 상태에서 어디서 사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인천공항부터 열심히 검색해 달라라마에서 판다는 블로그글을 보았지만, 정말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일단 가장 가까운 달라라마(꽤 멀었음)로 향했고, 여차 없으면 애플가서 정품 사지 뭐(ㅠㅠ) 하고 있었음. 나는 점원에게 먼저 잘 안 물어보는 편인데, 매장을 세바퀴 돌고 없길래 나가기 직전 자포자기한 채로 점원에게 물어봤는데 바로 옆에 있었다...ㅎㅎㅎㅎ 와 아무튼 있다니! 그것도 콘센트, 케이블 각각 5불씩!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제 이 저렴이가 터지지만 않으면(?) 난 살았나 하면서 돌아왔다. 다행히 느릿느릿 잘 충전이 되었고, 그날은 이른 시간 누워서... 아무것도 안 했다. 아 나 밴쿠버 좋아질 수 있을까... 꽤 심난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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