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는 이는 마음과 몸이 다친 사람과 함께 있나보다. 마음 뿐 아니라 몸이 다친 사람을 상상하는 이유는, 이 노랠 처음 들을 때부터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중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많이 죽고 있었는지, 마치 실시간으로 사망소식이 들리는 것 같은데도 세상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다쳐야만 끝이 나는 하루”라는 가사처럼, 다치거나 죽는 게 숙명인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듯이.
어떤 이들은 “커튼이 가려놓은 창 밖의 하루”에 희망 보단 두려움을 떠올린다. 하루 일을 곱씹으며 누운 밤, 그들은 “말이 그저 하고픈지, 할 말이 있는지 잠이 와도 쉽게 잠 들지 못”한다. 때로는 늦은 밤까지 “다리가 저리도록 어깰 짓”누르는 고된 노동을 할 때도 있다.
모든 게 능력이 부족한 너의 탓, 좋은 수저를 타고나지 못한 너의 탓, 더 근면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는 너의 탓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정당한 자기주장은 고사하고 하소연 조차 부끄러운 일이 되어 이미 그들은 모든 말들을 삼키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누가 이들의 목소리를 앗아갔을까?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은 그저 토해내듯 쏟아내는 것 뿐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없는 그들의 말들은 타인에게 들려지지 않는다. 가닿지 않은 채, 토해진 말들은... 토한 사람이 다시 알아서 치울 뿐이다. 듣는 이도, 책임져 주는 이도 없기에.
차라리 괜찮아 질 거라 말하면 얼마나 쉬울까? 그냥 텅 빈 위로라도 건네볼까? 말을 잃은 이 옆에 선 그 사람은 “울지는 말”라더니 이내 말을 바꾼다. “아니 울어도 돼요.” 괜찮아 질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조금은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날이, 지금보다 조금은 덜 아플 날은 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도 잘 모른다. 오히려 되묻는다. 믿어도 될까? 믿어도 될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무력함 속에서 그저 손 잡아주고 함께 울어주기를 택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믿어보기로 해요.” 믿으세요가 아닌 믿어보기로 하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서 있는 곳은 고통받는 사람의 맞은 편이 아닌 옆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은 결코 고립되지 않는다. 그는 노래를 통해 고통스런 현실을 나누는 ‘누군가’를 자처한다.

'이승윤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시적 허용 (2020) (0) | 2021.05.08 |
---|---|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무얼 훔치지 (2016) (0) | 2021.05.05 |
[내맘대로 감상] 이승윤 — 없을 걸 (2011) +어린이날 스페셜 (0) | 2021.05.04 |
2승윤 2 (0) | 2021.02.01 |
2승윤 (0) | 202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