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D-9 weeks 다시 시작하는 주간 보고 / 대림 첫 주 / 왬

winter_inspired 2021. 11. 29. 16:37
https://www.spiegel.de/geschichte/wham-last-christmas-der-ohrenkrebs-song-a-1065219.html

어제부로 교회력의 첫날인 대림절이 시작됐다. 이 계절이 되어야 비로소 날뛰던 마음이 가라앉고 내 앞에 계신 하느님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한참 본다고 한다. 예술가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리며, 일상 곳곳에서 나도 가끔은 이런 경험을 동경하게 됐다. 매 순간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명민한 촉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되어 사람 무리 속으로 오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 첫 주, 감사성찬례가 시작될 때 내 마음은 이미 조금씩 준비를 시작했다. 앞으로 4주는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흡수하기.
일년 넘게 미뤄 온 유학길, 이제 열리나 싶었는데 변이 무엇. 지난 주 부총장님 이름으로 메일까지 왔는데. 나는 벌써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여, 지금 내 시점에서 일년 뒤 멀어져 버린 것들 중 무엇이 제일 아까울지 재고 있단 말이다. 내 마음의 준비를 방해하지 마ㅠ
지난주에는 학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촬영장엘 다시 갔다. 이젠 '우리' 프로그램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에 넘치는 팀과 함께 일하는 내 자리에서 뇌에 힘주고 열심히 일 하는 게 남은 시간 내 제일 큰 목표다. 나 자신에 확신이 없는 채로 여태까지 왔는데, 대형 사고는 없었으니 너무 쫄지 말고 앞으로 여섯 번의 대담 대본과 열 번의 VCR 대본, 여덟 번의 촬영, 세네 번의 부가 촬영을 위해 가보자 가보자 후회없이.
회의하러 출근. 주말에도 열일했고, 밤에도 일해야 하니 지금은 그냥 커피 마시면서 블로그에 노가리를 까기로 했다. 왜냐면, 오늘로 퇴사까지 딱 10주가 남았기에. 작년에 퇴사를 앞두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해서 썼던 주간보고서를 다시 쓰기로 나랑 약속을 했다. 오늘부터 열 번의 주간 기록을 남기겠다. 퇴사를 미루고 미뤄 그래도 좋은 경험 많이 했다. 아쉽고 빠르게, 더디고 지루하게,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있다.
너무 예쁜 왬!... 치명적 아름다움의 조지 마이클과 '아픈 손가락' 매력의 앤드류 리즐리. 앤드류님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여서 미안합니다... (근데 사진에서도 둘의 이미지 사용 방식이 너무 다른 거 아닌가ㅠㅠ) 지금 앤드류님은 가수로 살고 있진 않지만 기부도 많이 하고 자전거도(?) 많이 타시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오셨다. 저 불멸의 콤비 시절 한쪽에만 스포트라이트가 가 마음 고생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확실히 내면이 건강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 시절을 소중히 여기며 추억하고, 팬들과도 자주 소통하시는듯. 그렇기에,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 엔딩 씬에 나온 앤드류 리즐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난 엄청 내적 탄성을 질렀다.
그나저나 조지 마이클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치명적. 2019년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개봉했을 때는 전혀 볼 생각 안 하다가 (뻔한 로코일 것 같다는 내 몹쓸 편견. 폴 페이그인데 그럴리가!)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보고 폭풍 감동을 받았다. 완전 조지 마이클을 위한 헌사인가 싶게 그리움이 철철 묻어나는 영화였다. 왜냐면 내가 보면서 그랬거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그리움을 영화로 실현해 놓은 느낌이었는데 찐팬분들도 완전 좋아하는 영화 아녔을지. 난 좋아하는 왬과 조지 마이클 노래가 많은데, 그래도 이 계절에 어디에서라도 라스트 크리스마스 전주가 땅땅 나오면 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노래가 없다. 모든 음과 박자, 창법, 목소리, 중간에 'maybe next year'라고 하는 짧은 나레이션, 재작년엔가 4K로 풀린 뮤직비디오까지, 하나의 예술인 이 노래는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