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11 예술의전당 - 에르제:땡땡전

winter_inspired 2019. 2. 16. 22:48


기억에 남는 선물썰. 스위스에 다녀 온 지인이 기념품으로 풍경엽서 꾸러미를 돌리고 있었는데 내게는 다른 엽서를 쥐어줬다. “이건 보자마자 딱 너꺼더라고.” 보자마자 딱 내꺼인 그 엽서란, 단추구멍 같은 눈, 까만 테두리에 단순&명료한 색으로 채워진 캐릭터 엽서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그림을 좋아했다. 이걸 발견하고 내 생각이 났다니 기분이 좋았다.

이런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체의 근원을 무조건 에르제의 땡땡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근본이 아주 없진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건 바로 ‘클리어 드로잉’ 기법으로, 에르제로부터 시작된 명확한 검은 선에 명암 없는 깔끔한 색을 칠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내가 디즈니 그림체보다 더 매료된 것 아니었을까. 당연히 무수한 만화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테니. 어쩐지 처음 전시 되어있는 추상회화부터 빠져들더라니, 내가 혹시 조상님을 알아본 걸까.

에르제:땡땡전은 엄청 재밌다. 에르제의 천재적인 스토리텔링, 캐릭터에 대한 애정, 독특하게 발전시킨 그림체, 전쟁과 전체주의 등의 시대적 풍파, 인종과 문화를 편견없이 넘나 든 상상력과 감수성, 에르제가 만나 우정을 나눈 사람들과 작품 속 그들의 흔적... 에르제라는 인물과 그 분신과 같은 땡땡이 가진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만큼 전시는 꽉 차게 즐겁다. 폐장시간까지 나에게 주어진 딱 두 시간 관람이 조금 짧았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땡의 모험 대부분의 캐릭터는 어쩜 저렇게 다 남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