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첫 열 밤
호주에서 열 밤을 자고서야 처음 블로그에 끼적일 마음이 생겼다. 아예 낯설어 버리면 모를까, 애매하게 낯선 곳에서 별 거 아닌 일로 헤매니 즐겁지 않은 요 며칠이었다. 시드니 공항에 처음 내려서 학교에서 제공해 준 공항 픽업 차량을 타니 에드 시런 노래가 나왔다. 그 다음은 마룬 파이브. 한참 비행기 타고 내린 거 맞나, 낯선 거라면 입고 있던 후드티가 너무 덥다는 것 뿐… (나온 노래들 제목이 순서대로 bad habits 그리고 beautiful mistakes. 나쁜 습관, 아름다운 실수) 떠나 온 인천공항이 그립고, 떠나기 전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 종로, 우리 동네, 그리고 가족의 얼굴 다 아른거리고. 그, 몇 개월 나온 것 가지고 나도 좀 이런 유난을 떨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날까봐 헤어질 때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건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 애틋함에는 부분적으로 우리 가족의 어떤 트라우마가 섞여 있다. 가는 도중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찔끔씩 울었다.
time heals 이듯이 어차피 지나야 하는 시간이 있는 건 맞는데 지난 헤매임의 열흘 중, 차츰 정돈이 되기 시작한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구한 집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첫 며칠, 날 걱정해주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마치 엄마와 같은) 진심어린 걱정의 토닥임을 받은 것이다. 정말 지낼만 한 곳인지, 같이 지내는 사람은 안전한지 여러 가지 물어보시다 급기야 본인이 집을 직접 보러 오시겠다는데, 약간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 됐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에둘러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 굳이 방문을 하셨다. 이곳저곳을 둘러 보시고, 다른 방의 청년과 만나 인사 나누시고 (그 덕에 나도 그 청년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집주인과도 만나 한동안 대화를 나누셨다. 그 옆에서 *애기*가 되어 버린 나는, 민망하고 감사해 어쩔 줄 몰랐다. 어떻게 이런 호의를 초면인 내게, 그것도 잠깐 머물 내게 베푸시는 건가. 그렇게 전혀 뜻하지 않던 어른이 내 옆에 서 있었다.
그 어른은 내가 나가기 시작한 성공회 교회의 사모님이다. 학교 근처에 마침 성공회 교회가 있길래 한국에 있을 때부터 점 찍어 둔 곳인데, 막상 호주에 와서는 완전 로컬 교회를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했다. 근데 하필 그때는 마음이 그늘져 있어서 그런지(;;;) 주일이 되자 별 고민 없이 한인예배로 향했고, 이 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여튼 그분은 집을 꼼꼼히 보시더니, 한인마트에서 도시락을 사서 집에 갈 건데 나도 같이 가서 먹자고 초대를 해 주셨다. 목사님과 사모님, 아들 세 식구의 식사 자리에 함께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어쩌다 성공회를 가게 됐어요?”
“제가 대학 때 활동하던 단체가 있는데요. 성공회랑 꽤 친숙한 단체였거든요.”
“무슨 단체인데요?”
“IVF라고…”
“…”
놀람의 정적… 사모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무 놀란 표정을 지으시길래, 설마 무슨 관련이 있으신가? 나도 놀란 눈을 하고 뭔가 말씀하시길 기다리는데. 아니 글쎄, 목사님 내외는 내가 IVF 역사책에서 봤음직한 80년대 원로 간사 부부셨던 것이다! 호주의 수많은 성공회 교회 중 내가 발 내딛은 그 교회가 아마 유일한 IVF 간사 출신 목회자께서 사목하시는 곳이었을테고, 그곳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다정함을 베푸신 분은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고향 IVF의 대대대선배님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분들께 나는 호주에서 우연히 만난 첫 IVF 출신이었다. IVF 출신이 서로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다. 특히 그 역사를 배우면서 그 이야기들을 꽤나 사랑했던 나로서는,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또한 내가 머물게 된 곳에서 이분들을 만났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이 믿기 힘든 우연에 대해 사모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아까 집주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길래, 속으로 이랬어요. ‘Are you sure?’ 그런데 이제야 확실해졌네요. 하나님이 인도하신 게 맞아요.”
이곳에서의 시간을 넘어 내 인생에 어른 한 분을 맞아들이게 된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란 아무것도 가늠해 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