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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박스(2014) -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winter_inspired 2017. 7. 15. 09:42


도시락을 싸는 여자가 있다. 냉랭해진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그 가장 맛있는 도시락은 엉뚱한 이에게 전달된다.

찌든 얼굴로 출근하는 남자가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쿠사리를 먹인 까칠한 남자는 만원 버스에 올라 퇴직을 앞둔 회사에 아무런 기대감 없이 출근한다. 그런 남자에게 작은 활력소가 찾아왔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타고.

여자에게 도시락은 마지막에 잡는 지푸라기 마냥, 남편에게 받은 거절감을 회복시킬, 남편과의 최후 연결고리이다.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통에 계획은 무너졌다. 다만 그녀에게도 역시, 마음에 힘을 일으킬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 역시 엉뚱한 이와 나누게 된 도시락 속 편지를 통해서다.

둘을 연결하는 건 도시락과 편지에 적힌 글자들만은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차디찬 세계를 공유한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뎌야 하며, 매일 외로움과 매일 싸운다. 돈이 없거나 혹은 매우 따분한 일을 하며 번다. 그러다 문득 비참해지는 순간을 감춘다. 괴로운 뉴스를 매일 듣는다. 가령 생활고에 시달리다 투신했다는 한 엄마와 아이의 뉴스가 나오는 뭄바이의 어느 밤을 공유한다.


이 모든 걸 극복하는 건 우리의 능력 바깥에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생각은 자연스럽게 저 너머 행복지수가 높다는 나라로 흐른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과연 행복할까, 그리고 과연 그 나라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자는 남자의 제안에 여자는 다시 한 번 선택의 순간을 미룬다.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 준대요." 그 모든 만남의 순간이 그렇듯, 이 선택을 만나게 될 다른 기회를 기약하면서.

그렇게 이 영화는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력하게 찾아올 때마다 불쑥 떠오른다.

런치박스(Lunch Box, 2014)
리테쉬 바트라 감독
이르판 칸, 님랏 카우르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