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밥 로스는 다 알고 있다

winter_inspired 2019. 12. 19. 01:36

ASMR 같은 수면 도구가 생겼다. 길은정, 김영만과 함께 옛 EBS 키즈들의 미술 선생님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원제는 Joy of Painting이고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유튜브에 있는 것 같은데 가만보니 이거 너무 유튜브 최적화 콘텐츠 아닌지. 30분 동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패턴을 구경하는 일 완전 요즘 장르 아냐..?
나도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보기 시작했는데 글쎄, 한 편을 채 못 보고 잠이 든 게 아닌가. 몇 번의 셀프 임상 실험 결과 모두 시청 도중 수면에 성공하였고, 나는 밤잠 설치는 주변 지인 몇명에게 추천을 하기에 이른다. 나긋나긋 목소리에, 반복적인 패턴을 활용하는 기술, 늘 어떤 순도 99퍼센트의 자연 풍경만을 그린다는 점(가끔 인공물 - 가령 오두막이 나옴)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이 전해지고 있다. (from me!)

밥 로스의 유화가 미술쪽에서 어떻건 간에 한번 보면 넋을 놓게 된다. 무엇을 그릴지, 무슨 색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 어떤 도구로 어떤 효과를 낼지, 나무랑 산, 여백은 어디에 둘지... 이 모든 게 이미 머리에 다 짜여서 슉슉슉 그리는 과정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화가니까 당연히 저렇게 그리는 거겠지만 한 전문가가 자기 분야의 무언가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저 감탄이 나오고.. 어떤 때는 물감을 완전히 말린 후 채색해야 해서 사전에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가져오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걸로 보아 이분은 녹화 전에 똑같은 그림을 한번 그려보셨던듯. 거침없는 태도로 전체적인 구성과 모든 디테일을 컨트롤하는 노련함. “참 쉽죠”라는 말의 맥락이 바로....

전체와 디테일을 볼 줄 알며, A부터 Z까지의 모든 과정을 뒷심있게 완주하는 능력. 능력이라기엔 투박하고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아무나 못 하는. 그래서 요즘 내가 제일 동경하는 능력!! 최근 내 베드타임 루틴이 된 밥 로스 아저씨의 가르침으로 내 공부 결심 하나를 세웠다. 나도 밥 로스를 본 받아 한번 물어버린 텍스트는 부분부분 읽거나 중간에 다른 텍스트로 바꾸기 보다 시간이 걸려도 전체를 다 소화한 후에 놔주자는. 나도 건들인 텍스트는 정복하고 다음 것으로 넘어가겠다. 후후 :)

이 기법 거의 매번 나오는데 정말 소름이다. 캔버스와 도구의 마찰로 한번에 쓰윽 만들어진 물감의 질감이 실제 설산의 질감이 되다니. (ㅎㄷㄷ) 그니까 하나하나 질감을 표현하려는 게 아니고, 도구의 특성을 파악해 실제 모양과 싱크로를 맞춘 게 너므나..
정말 소름
가끔 이런 거 너무 웃김. 누가 지팡이 만들어줬다고 가지고 나오셨는데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쉽죠?”의 산 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