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른 이야기: 소중한 것을 결코 얕보지 마라
방 정리를 했다. 책꽂이에 책을 꽂는데 지금까지 내가 스쳐 간 전공들이 새삼스럽게 너무 많았다. 영어학과 전공 서적만 해도 언어학 뿐만 아니라 영어교육학, 문학에 걸쳐서 정말 애매하다(원래 이렇게 다양하게 가르치는 게 맞나). 미디어 전공 서적도 분야가 엄청 다양한데, 거기다 사회학에 인접한 공부를 했어서 철학&사회학 책, 이제는 급기야 통번역 서적들이 모여들고 있다. 아아 정말 나란 사람의 20대 방랑기가 책꽂이에서 저리도 적나라하다.
지난 시간에 교수님이 통번역사의 중요 자질 두 가지를 말씀해주셨다. 호기심이 풍부할 것, 독립적일 것. 책꽂이에서 어깨를 맞댄, 서로가 낯선 저 아이들. 그래도 그거 아니. 내가 다 사랑했었어. 안 사랑한 아이가 없었다. 배움의 기쁨을 알아가던 그 설렘은 나만이 기억한다. 반짝이는 눈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좌절과 후회만 남은 줄 알았지만, 그 전에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나의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기쁨도. 호기심이 풍부할 것, 독립적일 것. 다시 생각해도 나는 결국 과정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구나. 그러나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조금씩 명료해지고 있다. 또한 지금의 나는 그 많은 책들을 딛고 서 있다는 것도.
그건 그렇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말이다. 나는 정말 우직하니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제일 소질 없는 일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잘 지킬 수 있다. 내가 발견한 소중한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건 꼭 내가 해야 한다. 그건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변덕스럽고, 진득하지 못하고, 충직하지도 않고, 시덥잖고, 새로운 것에 홀랑 넘어가버리는 가벼운 사람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소중한 것은 내 모든 성향과 나약함을 이길만큼 힘이 세다. 이러저리 눈을 돌리는 나지만, 나는 늘 그곳에 있고 싶다. 지켜야 하는 일에는 그 어떤 것보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스누피가 남긴 이 말은 언제 들어도 날 설레게 한다. "이 세상에서 저 나무의 잎사귀처럼 소중히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야. 난 이제 자러 갈 거고 내가 다시 깼을 때 저 잎사귀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거란 걸 알아(It's nice to know that there are some things in life that you can count on, like that leaf over there on that tree. I can go to sleep and I know when I wake up, that leaf will still be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