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를 붙여 준 이유들

winter_inspired 2024. 4. 4. 12:30

오늘 정확히 4월 4일, 새로운 일을 한지 딱 한달이 되어 더 늦기 전에 소회를 올린다. 지금은 업무 중인데 오늘 일도 바쁘지 않아 계속 멍 때리게 되는데 차라리... 그리고 글 쥐뿔도 잘 못쓰면서 계속 퀄리티 있는 거 남기려다 보니 포스팅을 미루고, 결국 올리지 않게 된다. 이젠 질보다 양에 집중.

대학교 졸업 즈음부터 나는 비영리단체를 기웃거렸는데 이상하게 연이 안 됐다. 마음이 떠나는 쪽은 (더 이상하게) 나였다. 이곳에 서류가 합격하고서도 면접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러던 중, 시원하게 답이 내려진 순간을 만났다. 1차 면접+과제를 성심성의껏 준비했고, 통했다. 2차 영어 면접을 대차게 말아먹었음에도 정성을 잊지 않아주셨고, 마지막 3차 면접 또한 버벅거렸지만, 진심을 알아봐 주는 느낌이 드는 기이한 면접이었다. 또 어느 곳에서도 어필하기 힘든, 아래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내게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다.

1. 비영리단체에서의 번역 봉사: 이 번역 봉사를 할 때, 나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막학기에 돈 받고 알바 겸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 하지만 이 비영리단체는 내가 입사한 단체와 아주 긴밀히 일하는 곳이었고, 내가 번역한 내용은 정확히 이 단체와 협업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이 비영리단체는 오랫동안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 관심이 결론적으로 이렇게 쓰였다.

2. 애증의 내 논문: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내가 한 건 문화연구였다. 우리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이 전공은 너무나 나에게 애증이었다. 너무 재미있는데, 너무 어려워.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미래가 없어. 너무 중요한데, 너무 돈이 안 돼. 차라리 당시 핫하기 시작했던 인공지능을 공부했다면? 빅데이터를 공부했다면? 하지만 뺀질나게 마석을 왔다갔다 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만나 인터뷰했던 경험이 내가 지금 입사한 곳에 강하게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사 경력이다.

3. 켄 로치: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3차 면접 전에 이 영화를 보았고, 면접에서 "요즘 제일 관심 있게 보는 사회 문제가 뭐냐"란 질문을 받았다. 준비해 간 질문이 아니라 당황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Last week, I watched a movie, it's a newly released flim of my favorite director Ken Loack~" 하면서 대답을 시작했다. 난민에 관한 영화인데, 요즘 관련 문제가 심각해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 이 답변을 좋게 보셨다는 후문이.

4. Like-minded being: 호주 막바지에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나는 자랑할 것도 보잘 것 없다 느끼는 순간이 많아도, 내가 추구하는 것에는 하등 잘못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그 추구를 꾸준히 가지고 살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사는 방식은 그 추구를 닮게 되어 있다는 것. 면접 마지막 질문에서 향후 내 계획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like-minded people을 만나는 거라고 했다. 한동안 자주 한 생각이라, 이 대답은 진심이었고 자연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내가 쓸데 없다고 여긴 경험들이 지금의 회사에 나를 붙여 주었다. 사안에 대한 공부도 중요한데 영어는 갈길이 멀어서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한다.